[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농막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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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농막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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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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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요즘 꽃이 만발한 철이라 양봉장에 딸린 오래된 농막에서 지내고 있다.

아침 일찍 벌이 일하러 나가기 전, 저녁 늦게 일하고 돌아온 뒤에 벌을 돌보아야 할 일이 많아 농막에서 머무르는 일이 자주 생긴다.

집 주변에 크게 자란 오래된 나무들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변화 시키며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네에서 떨어져 있어 하루 종일 사람구경을 못해도 나무가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된다.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들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계절을 맞는 모습이 즐거움도 쓸쓸함도 가져다준다. 자연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얼마나 시원한지 행복하기까지 하다. 이러저런 이유로 농막에 머무르는 것이 즐겁다.

까치가 심어 놓은 씨앗을 다 파먹고, 노루와 산토끼, 멧돼지가 와서 뾰족이 내미는 새싹을 다 따먹어 작물을 죽여도 속이 상하지 않는 것은 자연의 섭리대로 살고 있는 것이 좋아서인지 모른다.

밤새 피를 토할 듯 울어대던 쏙독새의 울음이 잦아들고 이어서 온갖 산새들이 노래를 하기 시작하면서 새벽이다. 시끄러운 도심의 소음을 피해 시골을 찾아 온 사람들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쏙독새의 울음은 시골의 조용한 밤하늘을 무섭게 흔들어댄다. 새벽 동트는 것과 함께 고라니도 짝을 찾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밤에 우는 새, 새벽에 우는 새, 낮에 우는 새, 모두 시간과 영역과 울음소리가 다르다. 그들이 살아가는 형태도 가지각색일 것이다. 고라니, 산토끼, 새끼 멧돼지 같은 산짐승이 언뜻언뜻 눈에 띄지만 사람 기척만 나면 어디에 숨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꿩과 산비둘기는 대낮에도 겁 없이 돌아다녀 심심치 않게 벗 삼아 살고 있다.

집 앞 나무 밑에 커다란 항아리를 엎어 놓고 그 위에 겨우 내 새 먹이를 얹어 놓았었다. 곤줄박이, 굴뚝새, 박새, 온갖 작은 새들이 와서 먹고 놀다 가서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어느 날 까치 한 마리가 오기 시작하더니 새들의 먹이가 순식간에 없어지고 작은 새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까치를 멀리 쫓아 버리고 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속을 끓인다. 여러 가지 씨앗 모종 부어 놓은 것도 다 파 먹어버려 까치에 대한 미움이 더해 간다.

겨우내 손을 대지 않았던 창고 정리를 하느라 무심코 새집을 건드려 꼭 새끼 손톱만한 알이 세 개가 굴러 떨어져 깨졌다.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깨진 알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어미가 와서 보면 얼마나 안타깝다고 놀랄지 미아해서 잘못했다는 말을 자꾸만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어쩌랴.

주변에 많이 피어있는 꽃으로 인해 제법 벌집에 꿀이 찼다. 쥐가 꿀을 훔쳐 가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농막에 갖다 놓았다. 집 주위를 눈에 익히게 하려고 매어 놓았더니 낮에는 사람이 있어 얼씬도 못하던 커다란 검은 도둑고양이가 밤이 되면 제 영역이라 그러는지 매어놓은 우리 고양이에게 와서 큰소리로 싸우러 덤비고 못살게 굴어 할 수 없이 집안에 들여 놓고 잠을 재웠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제 몫 챙기느라 혈안인 것은 똑 같다.

늙어서 제 맡은 일을 끝내고 수명을 다 한 벌을 경비 벌들이 벌집 입구에 끓어내다 버린다. 다람쥐 한 마리가 죽은 벌을 먹으려고 벌집 근처에서 산다. 귀여워서 함께 놀고 싶은데 사람만 보면 달아나느라 바쁘다. 멀리서 보면 벌을 열심히 물어 가다가도 사람이 얼씬하면 도망을 가서 될 수 있으면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귀가 꽤 밝은 다람쥐인 것 같다.

집 주변에는 온갖 잡초들이 종족을 퍼트리려고 애를 쓰는데 사람은 그것을 없애지 못해 안달이다. 벌에게는 농약이 금물이라 우리 집은 농약을 절대로 쓸 수 가 없다. 그래서 잡초를 손으로 뽑아 없애는 잡초와의 싸움을 끝이 없다.

잔디밭을 매면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잡꽃들이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아름다워 뽑을 수가 없다. 꽃이 너무 예뻐 잔디밭이야 잡초 밭이 되든 말든 손을 대지 않고 감상을 하는 재미도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잡초가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을 보며 나도 모르게 오묘한 세상 이치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창조주가 만든 것일까. 자연히 진화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한참을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접하면서 농막의 하루는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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