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칼럼]봄맞이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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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봄맞이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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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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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창문의 유리를 통해 굴절되어 반사되는 햇빛이 온실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삼월의 첫째 주 휴일이었다.

거실로 스며든 햇빛의 열량이 후끈하게 덥혀진 난방 온도처럼 느껴져 추운 겨울 동안 창문도 열지 못하고 꽉 막혀 살던 집안에서 잠시나마 해방이 되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왔으나 봄을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인 상태다. 불현듯 봄을 알려주는 강물을 보고 싶은 충동에 남한강 줄기인 여강(여주의 강)을 보기 위해 무작정 차에 올랐다.

여강으로 가는 길은 오랫동안 눈에 익혀두어 언제 봐도 낯익고 정다운 풍경이지만 매서웠던 겨울 추위로 한동안 발길이 뜸하다 보니 오늘따라 생소하고 삭막하게 느껴진다. 이천시 백사면을 지나 여주시 흥천면 상대리를 통과하여 이어서 목적지인 능서면 내양리로 접어드니 한가롭게 보이는 마을과 더불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에 들어온다.

조급한 마음에 포장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마을 진입로를 가로질러서 강가에 다가서니 봄의 햇빛에 푹 빠져 설레어진 논과 밭들이 경쟁하듯이 아지랑이를 피우고 겨울 동안 비둔해져서 유속이 느려졌던 강물이 원기를 회복해 빠른 물살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려준다.

눈앞에 펼쳐진 강은 여름 장마로 흘러든 황토를 걸러내어서 작은 모래섬을 만들었고 물줄기가 돌려져서 실 개천이 된 작은 하천이 길을 가로막는다. 잠시 망설임 끝에 승용차를 몰아 그대로 돌진했다 쏴아하고 차체에 부딪치는 물소리가 시원하고 상쾌하다.

실 개천을 건너자 봄의 햇살에 나부끼는 강변의 풍경에 매료되어 모래밭 저편까지 여유롭게 걸어 보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눈부신 햇빛에 전신을 노출시킨 강변은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봄 맞을 채비가 부족한지 여기저기 살얼음이 유리 조각처럼 남았고 물장난을 치듯 작은 돌을 돌돌 굴리며 소리를 내는 물살 속에는 차디찬 겨울의 차가움이 그대로 남아있다.

삽상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허허벌판 강변에서 겨울 내내 외로움을 뒤집어쓴 갈대가 사람을 만난 기쁨에 왈칵 달려들어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가여운 마음에 갈대에 다가가자 여름 장마가 할퀴고 간 뒤에 흔적으로 남은 페비닐을 온몸에 걸친 흉측한 모습이 종전까지 상쾌했던 감정을 사그러 들게 한다.

강가에 있다 보면 추억 속에 빠져들고 잊혔던 추억이 새록새록 난다 또 바람소리 물소리가 노래방의 반주처럼 느껴져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고 보디가드를 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든든해진다.

모래밭을 걷자 강 건너 편의 모습이 눈 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겨울 가뭄으로 인해 깊은 물속을 얕게 드러낸 건너편 강안은 마치 지각 변동으로 인해 죽음의 협곡처럼 변해버린 황량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앙상한 뼈마디를 수면 위로 보기 싫게 드러낸 검은 바위의 몰골처럼 느껴져 섬찟해진다. 강을 경계로 하여 넓은 벌판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드넓은 벌판은 몇 년 전만 해도 농작물을 심어 알찬 수확을 거둬들이는 농심의 벌판이었으나 4대 강 개발로 대부분 유원지 시설로 변했고 일부는 전투기의 사격연습을 실시하는 훈련장으로 변했다. 매일 폭음을 울리며 주변을 진동하던 전투기의 움직임도 공휴일만은 훈련이 축소되어선지 이례적으로 조용하기만 하다.

요란한 전투기 소리가 그친 강변은 강물의 유쾌한 물 흐름만이 정적을 깨우고 심신을 맑게 해 준다. 한동안 강심에 젖어있던 내 눈은 강변과 경계를 이루며 길게 늘어선 나무들에 초점이 모아졌다. 온종일 무표정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나무들은 겨울 추위에 너무나 고통을 받아서인지 사람이 다가가도 미동도 없고 반기는 기색도 전연 없다.

은연중 인간의 삶을 나무들과 비교해 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젊은 날의 화려함을 꿈꾸며 정신없이 살아온 삶은 그 자체가 세월 속의 나무였다. 인생이란 척박한 땅에 심겨 거친 세월의 비바람 속에 황혼의 낙엽을 소리 없이 떨꾸었고 늙은 고목으로 변해 저 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누누이 일깨웠다.

나무들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니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는 소리에 눈꽃을 살짝 뜬 벚꽃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일렁인다. 갑자기 황사의 시샘처럼 달려드는 바람이 싫어서 얼굴을 돌리자 겨울잠을 깬 물고기를 잡으려고 투망을 던져대는 작은 고깃배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아 시선을 끈다. 봄을 알리려는 강변의 경관은 그림처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따분한 사람들에게는 강을 벗 삼아 대자연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기쁨을 맞게 해 준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제모습을 잃고 인위적으로 변형된 강을 바라다보니 먼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된 것 같아서 눈이 아리도록 담아두고 싶어 진다.

장시간 무료 관객이 되어 강변의 풍경을 홀로 즐기다 보니 적막한 분위기가 꼭 무인도에 온 것 같아 올 때와는 달리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변덕스러운 마음으로 뒤바뀐다.

바람을 뒤로 남기고 차를 세워뒀던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아침 뉴스를 보니 남쪽에선 때 이른 꽃들이 피어나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이른 봄을 알리기에 신이 났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고 속일 수 없는 것이 계절이다. 봄이 되자 영양 부족같이 보이던 앙상하고 까칠한 나무들이 힘을 내어 수액을 끌어올리며 초록의 빛을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봄은 어두웠던 긴긴 겨울을 훌훌 벗어 버릴 수 있는 반가운 손님이다. 남녘의 초록바다를 떠나온 3월의 봄은 겨울 어둠의 그림자를 말갛게 씻어내고 햇빛 영양제를 산과 들로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데 동분서주했다. 모처럼 강가에서 자유롭게 풍광을 즐기려던 내 계획은 일상의 시간에 매어진 귀로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차에 올라 시동을 켜니 눈앞에 하늘이 붉은 노을로 조명을 켠 것 같아 머뭇 거리는 사이 흐르는 강은 어두운 밤과의 만남을 재촉하려는 듯 한줄기 바람을 샛강으로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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