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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어버이 날에

기사승인 2019.05.07  13: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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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아버지와 이 세상을 함께 살아오면서 우여곡절과 함께 이런 저런 추억을 쌓았고, 그 삶속에서 좋은 경험과 교훈을 얻었다.

더 멋진 삶을 살도록 아버지는 내게 사랑과 용기를 주셨고, 때로는 가혹한 체벌을 내려 정신적 해이를 질타하셨다. 삶의 의미와 희망, 리더십을 가르치신 셈이다.

아버지는 왜정시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항상 신문과 책을 가까이 하시어 대학을 마친 우리들과의 대화에서 어느 때고 한 단계 높으셨다.

아버지는 성격이 칼날 같고 행동이 정갈하시어 빈틈이 없으셨다. 법도에 어긋나면 집안 대소가(大小家) 남녀노소 누구도 아버지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나는 장남이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야 하는 자리에 있어서인지 언제나 감시의 대상이었고,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점검하여 흐트러지는 날에는 가차 없이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 같았다. 항상 아버지의 눈길에서 멀리 벗어나려고 애를 썼고, 아버지의 기침소리만 들려도 옷매무시를 고치고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남들에게는 인정 많고, 자상하시면서도 나에게는 왜 그리 독하셨는지...

1966년 이른 봄, 나는 철원지역 전방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면회를 오셨다는 위병장교의 전갈을 받고 달려갔다.

집에 무슨 일이 있으신지, 왜 이런 먼 곳까지 갑자기 오셨는지, 큰 아들과 긴급히 상의라도 할 일이 있으신지, 진지는 드셨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두서없이 여쭈어 보니 “ 오늘 네 생일이잖아. 그냥 왔다” 아버지께서 내 생일을 챙겨 주신다는 것도 뜻밖이고 다 큰 아들 생일이라고 전방까지 물어물어 오신 아버지의 정성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너 봤으니 이제 갈란다 하시며 곧 가셨는데, 시골에 식당이나 다방도 없어 군부대 앞에서 배웅을 하는데, 아버지 뒷모습에서 점차 젊음이 사라지고 늙음이 다가 서고 있음을 보고 가슴이 찡 했었다. 세월은 나의 성장과 아버지의 몰락을 함께 가져오고,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희끗희끗 물들이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말. 담임선생님과 학생들이 진학문제로 대학과 학과 선택을 앞두고 긴장감이 팽배한 무렵인 어느 날, 아버지께서 계란꾸러미를 들고 상경하셨다.

담임선생님을 뵙고 내 진학문제를 상담하시겠단다. 선생님 댁이 근처여서 선생님을 찾아뵙고 상경하신 연유를 말씀드리고 아버지를 소개시켜 드렸다.

한참 후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대학과 학과를 결정했다며 통고 하신다. 성적이 미흡하여 국립대학에 지원 못하는 것만도 죄송한데 담임선생님과 심사숙고하셨을 터이니 엄하신 아버지 말씀에 토를 단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시골 농부 형편에 마땅히 선물할 것도 없고, 꼭 뵙고 자식의 장래를 의논해 보고 싶은 심정에 볏짚으로 계란꾸러미를 만들어 오신 아버지, 나는 지금도 그 계란꾸러미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큰 아들의 얼굴이라도 보려고 전방까지 찾아오신 아버지, 회초리로 혼을 내고 빈틈없이 엄하기만 하시던 아버지의 어디에 그런 따뜻함이 있었는지 그 시대 내 아버지의 감추어진 자식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을 두고 속 깊은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한다. 지금도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돈다.

공부해라, 숙제해라, 책 읽어라 단 한 번 자질구레한 말씀을 하신 적 없고 큰 틀만 짜 주시던 그 마음씨가 하늘에 닿는다.

어버이 날 카네이션 한 번 달아드린 적 없는 아버지, 평생 마음 편했던 적 없었을 아버지, 저 세상에 계신 부모님을 떠 올리며 못다 한 자식의 도리를 뉘우친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성년의 날, 가정의 날, 스승의 날이 돌아와 나 자신을 반성하게 한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 도리를 다 했는지 너무나 일방적으로 가부장적 티를 내지나 않았는지 서로 격려하고 의견을 존중하며 절제와 품위를 지켰는지... 5월 한 달, 가정의 달만이라도 충효와 예절, 인성을 되찾는 시간이 되도록 강조하지만, 며칠 전, 가족모임에서 아들들이 애비에게 어렸을 적 혼이 난 이야기를 하는데 얼굴이 뜨거워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는 내 아버지의 반에 반도 못 미치는 허술하고 모자라는 부모였구나. 남은 시간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바탕으로 자식들을 사랑해야 되겠구나.

파종부터 이앙, 추수까지 농사일에 매달리다 보면 어버이의 자식사랑이 세상만사와 한 가지라는 걸 느끼게 된다. 한 평생, 의식주 걱정과 많은 자식들 교육에 등골이 휘었든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컥 가슴이 메어진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저작권자 © 중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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