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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노란 송화에 실려온 추억

기사승인 2019.05.15  15: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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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봄이 되자 산골짝마다 쌓였던 눈이 화사한 햇빛과 봄비에 녹아내려서 계곡으로 흘러들어 작은 폭포수를 만들고는 우렁우렁 힘찬 물결을 산 및 으로 쏟아낸다. 그러나 3월의 봄은 낮과 밤의 극심한 온도 차이로 온도에 민감한 식물들이 초록의 빛을 내기에는 아직은 무리인 것 같다.

기압골의 영향인지 몰라도 이상하게도 아침저녁으로 숲과 하천에서 유령처럼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사방에 연막을 쳐서 시야를 가리고 지옥 같은 고통을 준다.

극성스러운 안개가 물러나고 따사로운 햇빛이 지표를 비추면 신기루같이 펼쳐지는 봄의 장관을 기분 좋게 목격하게 된다. 4월이 되자 아침햇살은 금싸라기 같은 햇빛을 계속 내리쬐고 물오른 숲 속에서는 여린 풀들이 기지개 소리로 잠을 깬 산새들이 요란스러운 목청소리를 높여댄다.

봄은 겨울 동면에 지쳐있던 나무들에게 고농축 비료이며 성장 촉진제다 동면에 지쳤던 산속의 나무들은 초록빛 새 옷으로 갈아입기에 바쁘고 도시의 조경과 관상용으로 도로변에 심긴 벚꽃 가로수는 봄을 확실히 알리려는 듯이 가지마다 축제의 꽃등불을 수없이 매단다.

또 들녘마다 살짝 고개를 내밀었던 야생화들은 순식간에 꽃을 피어서 봄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나간다. 5월로 들어서니 모든 것이 완연한 봄 날씨고 봄을 느끼기에는 최상의 날씨가 되었다. 나무들은 산 전체를 보란 듯이 녹색 물감으로 채색했는가 하면 들녘은 매일같이 피고 지는 들꽃들로 인해 무척 바빠졌다. 잔솔밭 오솔길에 오르자 길가에 심긴 층층나무들이 온몸에 하얀 구름꽃을 피었다. 꽃 향기와 화사한 햇빛 에이 끌려 호젓한 산길로 들어서자 산을 떠받칠 듯 서있는 우람한 노송들이 여기저기서 위풍당당한 자태를 자랑한다.

시원한 솔향을 가슴 깊이 들이키고 싶은 마음에 소나무 그늘로 다가서자 한줄기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자 소나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저마다 가지를 출렁대며 춤을 추어댔고 잠시 후 바닷속의 산호가 산란을 하는 것처럼 노란 염색체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소나무가 바람에 입자를 날려대는 것은 송화가루였다. 송화는 풍선처럼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산 및 의 마을을 덮쳤고 이어 도시의 주택가로 날아들어 건물과 차량 등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노랗게 오염시켜버렸다. 송화가루가 날아들자 거부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갇혀버린 사람들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히 써졌고 미간이 찡그려졌다.

옛날 같으면 송화는 사람들이 찾아다니던 먹거리 재료였다 다식을 해서 제사상에 올려졌고 어린아이들의 주전부리 간식용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한때는 채취를 위해 열심히 찾아다니던 송화가 이제는 중국에서 날아드는 황사처럼 인식되어 천대받고 눈밖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송화를 멀리하는 이유는 송화의 미세분자가 눈이나 목에 들어가면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해 병원신세를 져야 하고 분신으로 여기는 자동차를 수시로 세차를 하여야 하는 곤욕을 치르게 하니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 리 없고 짜증 나는 일이 되어버렸다. 핀 듯 만듯한 소나무 꽃 송화는 일반 꽃들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고 향기 조차 없어 꽃으로 보기엔 아무래도 어색하다.

송화보다는 하늘을 보며 척척 늘어진 자태와 몇백 년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꿋꿋한 기상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보고 옛사람들은 충절을 맹세했고 지금 사람들은 솔잎처럼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갈망한다. 소나무에 꽃이 피어 송화가루 입자가 바람을 타고 떠돌아다니는 계절이 되면 잠을 깬 찔레꽃과 산딸기도 하얀 꽃잎을 피우고 달콤한 꽃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돌려세운다. 찔레꽃의 아름다운 자태와 산딸기의 달콤한 꽃향기에 떠밀린 소나무는 민낯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여인들처럼 바람 속에 몸체를 이리저리 가리면서 좀처럼 제 모습읕 보여주질 않는다.

최근 들어 소나무의 활용도가 더욱 높아졌지 고급 목자재로 사용되고 도시의 가로수와 주택가의 정원수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수목원과 나무시장을 통해 판매되는 소나무의 값은 고가의 가격으로 인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소나무가 돈이 된다고 하니까 산중의 소나무가 밀반출이 되고 산을 훼손시키는 불법행위가 저질러지고 있다.

미리 점찍혀서 밀반출된 소나무는 조경사의 손을 거쳐 그림 같은 작품으로 탄생되고 그 가격은 업자가 부르는 게 값이란다. 바람이 잦아들자 한사코 모습을 보여주길 거부했던 소나무의 진 모습이 드러났다. 푸른 솔이 송화로 인해 누렇게 변색되어 추한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소나무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잠시 후 소나무는 제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바람을 재촉하여 몸에 묻은 송화가루를 털어내는 몸치장에 열중했다.

그 모습이 흡사 구제역 방제를 위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방역 활동 같아서 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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