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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바쁘다

기사승인 2019.06.16  14: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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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컴퓨터로 크고 작은 일을 해 왔다. 수작업으로 할 때보다 훨씬 빠르고 쉬워졌다. 작게는 몇십 배 많게는 몇백배 몇천 배나 가속화되었다. 참으로 상전벽해를 보는 것 만 같다.

요즘 잠깐이면 될 손쉬운 작업도 컴퓨터가 없던 시대에 한다면 며칠 밤은 족히 새워야 할 것이다. 그걸 단숨에 해치우고, 어려운 수리 문제에서 가벼운 타자까지.

거기다 못하는 일이 없다. 쇼핑에서 건축 설계는 물론 도시계획을 세우는 거대 프로젝트까지. 알파고는 바둑의 귀재 이세돌을 물리쳤고 중국의 커제를 격파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이 컴퓨터를 처음 사용하면서 인간의 모든 잡다한 일은 컴퓨터에 맡기고 인간은 고상한 취미생활로 여가선용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70년대 공무원은 낮 시간은 사무실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 부락으로 산야로 퇴비 독려에 누에치기, 가마니치기, 조춘경, 추경, 객토, 비닐 보온 못자리 등으로 바삐 뛰고 밤늦게 사무실에 들어가 보고서를 만들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매일 야근했다. 정전이 잦아 남폿불을 켜고 꼬박 밤새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컴퓨터가 나오고 퇴직하면서 후배들은 야근 안 하는 시대에 근무할 것이니 참 좋겠다 했는데 천만의 말씀. 밤 10시가 넘어도 사무실마다 불이 켜져 있다. 사무실마다 야근하느라 바쁘다. 요즘 뭐가 바빠서 야근을 하느냐고 물으면 웃는다. 세대 차이가 나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것이란 표정이다.

같이 근무했던 여직원이 면장이 되었는데 그 여자 면장님에게 물었다. 답은 일거리가 늘었다는 것이다. 일들이 다양하고 복잡해졌으며 대량화됐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업무가 폭주한다. 쓰레기 수거만 해도 그렇다. 생각도 못한 분리수거를 해야 하고 병은 병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타는 물건과 타지 않는 물건을 분리해야 하고, 처분하는 장소도 여주는 매립장, 이천은 소각장…. 아무리 쪼개고 쪼개도 일손조차 모자란다고 울상이다.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지는 속도만큼 인간을끌고 가는 것 아닐까. 전산화되면서 인간은 기계의 주인 자리에서 밀려나 기계가 주인이 되고 사람이 기계의 부속화되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인간이 기계와 혼연일체가 되어, 인간이 기계화되어 일한다. 무조건 일한다. 더좋게, 더 멋지고 아름다우며 고급스럽게, 따라서 컴퓨터 인간은 상사가 요구하는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상사의 목표를 넘어 또 다른 미美를 추구하기 때문에 하염없이 작업은 늘어나고 확장한다. ‘일의 너머’-‘meta work.’ 인간은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근원을 찾고 원리를 연구하며 계산하던 본능이 사라졌다. 1970년대 어느 날 직접 물건을 만들어 사용하던 인간이 기술자 따로, 사용자 따로 분류된 것처럼. 컴퓨터 기술자가 아닌 사용자로서 인간이라면 컴퓨터가 계산한 건 무조건 믿는다. 이

젠 컴퓨터로 사용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근원을 찾지 않는다. 결과만 나오면 족하다. 원리를 찾다보면 밑도 끝도 없다. 하염없이 뒤적이다 보면 본질은 어느 틈에 잊고 엉뚱한 것에 하루해 소비하는 게 비일비재할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 인간-meter work person은 언제나 삭막하고 아프다. 목 디스크는 물론 머리, 어깨, 무릎, 발, 그리고 허리, 팔, 다리, 어느 것 하나 편한 게 없다. 따라서 인간은 피곤하고 근본까지 포기하다 보니 어느 틈에 호적부마저 사라졌다. 대신 가족부가 생겼다는데 어느게 좋은지 따져보지도 못했다.

컴퓨터 작업 초창기에 음란 사이트에서 서핑하는 게 비일비재했고, 외부 메일에 드나드는 것으로 주의를 받고 사이트를 차단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할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다. 하루해가 떨어져도 시간이 모자라 퇴근 시간도 잊고 일한다. 열과 성의가 일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일이 일거리를 물고 들어와서 일을 시킨다.

처음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릴때, 컴퓨터를 생각하는 기계로 알았다. 키보드로 다다다다닥 두드릴 때 순식간에 글자를 생성해내다가 내가 잠시 쉬거나 생각을 할 때면 포인터를 껌뻑거리며 무언가 생각에 골몰한 한마리 짐승.

“저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마음대로 조정하고 고치고 글을 만들고 지우고 쓰고 조립해온 저것이 꼭 인간인 나의 운영 여하에 따르는 것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저것이 더 발전하고 지능화되고 노련해진다면 언젠가 반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결국 저것들이 인간을 조정하고 인간을 운영하고 인간을 파멸시킬지도 모른다.

최근 컴퓨터의 인공지능도 그런 가능성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지. 왜냐하면 싹수가 노란 놈은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없지만 어려서부터 싹수를 보인 놈은 잘하면 그 가능성에 십분 부합하는 기대에 상응하는 게 사실이니까.

컴퓨터가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인간은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컴퓨터가 상용화되는 날부터 깊이 그리고 넓게 생각하는 법을 잊었다. 뭔가 모르게 바쁘다. 한 가지 일을 해결하고 나면 다음 일이 뒤따른다. 문득 ‘모던 타임스’ 영화 중 컨베이어벨트에서 일정한 속도로 상품이 쏟아져 나오면 인간이 그 속도에 맞추어 상품을 자동차에 실어야 하는데 속도가 늦거나 하나라도 밀리면 작업장이 상품들로 엉망진창이 되는 장면이 생각난다.

컴퓨터가 인간을 재촉한다. 모던 타임스에서는 독촉하는 컨베이어벨트가 보였지만 컴퓨터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실체가 나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나는 낚시도 잊고 등산이나 마라톤도 모두 잊었다.

바쁘다.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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