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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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6.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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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배드민턴채로 빗맞은 여왕말벌이 큰 덩치로 버둥거리고 있다.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것이 징그럽기도 하다. 새끼를 기르려고 적당한 집을 찾아 집 처마 밑을 맴돌다 당한 일이다. 집과 양봉장이 가까워서 새끼 기르기가 쉬울 것이니 좋은 보금자리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봄에 여왕말벌 한 마리를 잡으면 벌집 전체를 잡는 것과 같다. 여왕말벌이 새끼를 낳아 수백 수천의 말벌을 기르면 우리 집 벌통은 피해가 크다. 말벌 서너 마리가 오면 2만여 마리가 들어 있는 벌통이 순식간에 작살난다. 여왕말벌을 잡으니 적군을 물리친 장군이 된 기분이긴 하지만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마음은 언짢다.

요즘 잠자리가 부쩍 늘었다. 분봉해 놓은 여린 새 여왕벌이 교마를 하러 나갔다가 잠자리에게 잡혀 먹힐까 걱정이다. 천적들이 호시탐탐 여왕벌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데 잠자리까지 합세를 하면 여왕벌의 운명은 풍전등화가 된다. 교미를 한 여왕벌은 수정낭(受精囊)에 많은 정자를 몸에 지니고 있어 몸이 둔하므로 빨리 날지를 못하고 잡아먹으려는 적에게 대처하기가 어렵다.

코넬대학 생물학교수이며 양봉가인 토모스 D. 실리에 의하면 여왕벌은 태어난 후 첫 주 동안 자기 벌집을 떠나 근처 다른 벌집의 수벌 10~20마리와 짝짓기를 해서 수정낭에 오백만 마리의 정자를 저장한다고 한다. 하루에 천오백 개씩의 알을 낳으며 한 집단의 여왕벌이 여름 동안 낳는 알은 15만개나 되고 2~3년 동안 약 50만 마리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알 중에서 5%는 수정을 하지 않고 낳아 수벌이 된다. 수벌은 평소에 쓸모없이 놀고 먹이만 축내서 천대를 받지만, 새끼를 만들어야 되는 필요불가결한 존재다.

수천 수만 마리 일벌과 수벌 속에 숨어 있는 여왕벌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수벌은 몸집이 커서 자칫 여왕벌인 가하고 속기 십상이다. 여왕벌이 눈에 띄면 실제의 여왕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고 고맙다. 그 마음은 여왕을 대하듯 황홀하여 예의를 갖추고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벌을 키우는데 그만큼 여왕벌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여왕벌이 지나가면 벌들이 길을 비키고, 시녀벌 십여 마리가 뒤따르면서 먹이도 주고 몸을 매만지면서 보살핀다지만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힘들어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여왕벌을 축으로, 시중들면서 낳아 놓은 새끼 벌들을 키워 종족보존을 하는 것이 일벌들의 임무인데 여왕벌이 없으면 일 할 마음이 생길까 싶다. 여왕벌이 없는 통은 벌들의 안정을 못하고서 헤매기 때문에 내검을 하려면 통제하기가 어렵다. 벌통에 벌의 수가 많아도 조용한 것은 여왕이 있는 것이고, 왕왕대며 시끄러운 것은 여왕이 없는 통이다. 벌통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도 여왕벌의 유무를 알 수 있다.

여왕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봉준비로 새 여왕벌을 키우려고 왕대를 달아 놓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한다. 벌이 수가 많아지면 구 여왕벌이 가족의 반을 데리고 분봉하기 위해 새 여왕벌을 탄생시키려고 왕대를 만든다. 한 집안에 우두머리가 되는 두 여자가 함께 살 수 없는 것은 사람이나 미물이나 어려운 것 같다.

분봉을 못한 경우 두 여왕벌이 한 집에 있으면 싸워서 힘이 센 놈이 상대방을 죽이고 벌통을 차지한다. 여려 개 만들어 놓은 왕대에서 먼저 나온 놈이 나머지 여왕이 되려고 준비하는 벌을 모두 죽여 버린다. 여왕이 나오려면 ‘삐삐’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고 여왕벌이 들어있는 왕대를 물어뜯어 죽이는 것이다.

벌 한 통의 가격이 만만치 않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분봉을 시켜야 벌통의 수도 는다. 미처 새 여왕이 나올 것을 발견하지 못해 대처를 해주지 않으면 임의적으로 분봉을 해 나가 임시 거처인 높은 나무 꼭대기에 가족을 끌고 앉으므로 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분봉해 나간 벌을 잡으려면 여간 고역이 아니다. 벌에 쏘이지 않도록 단속을 하고 한 사람은 나무 위로 올라가 벌을 털어야 하고, 한 사람은 밑에서 벌을 받아야 한다. 밑에서 받치고 있는 벌통으로 여왕이 먼저 떨어지면 다행이지만 일벌만 떨어지면 다시 날아 올라가서 여왕한테 붙으므로 분봉한 벌을 잡아오는 일이 어렵다. 벌을 기르는데 겪어야 하는 한 과정이니 어쩌랴. 벌이 분봉해 나가자마자 바로 잡지 않으면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멀리 가버리므로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도 남편과 내검을 하면서 벌통에서 여왕벌을 찾을 때마다 머리에 쓰고 있는 망 사이로 기쁜 미소를 주고받는다. 여왕벌이 없으면 다른 통에서 옮겨 오는 여왕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험난해서 여왕벌을 만들어 줄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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