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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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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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2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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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퇴직을 하고 부동산 사무실에 나갔을 때, 내가 퇴직금을 연금으로 했다니 모두들 한탄을 했다. 일시불로 타서 부동산에 투자해 돈을 늘리지 그랬냐는 말씀이다. 그런데 아니다. 평생 공무원만 한 내가 무슨 재주로 부동산에 투자를 하며 어떻게 그걸 늘리겠는가.

공무원 퇴직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란 말이 유전했고 지금도 유효하다. 퇴직금을 투자해 돈 버는 이야기는 언제나 솔깃한 이야기며 틀림없이 돈 벌 거라는 게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어디 어디에 투자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돈 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해 보지만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가이드의 말을 찰떡같이 믿고 따르지만 야금야금 돈은 점점 들어가다 급기야 바닥이 나서야 속았다는 걸 알지만 가이드에게 따져 책임을 물을 입장도 못된다. 그는 의견만 제시했을 뿐 판단과 배팅은 당사자인 자기가 한 것이니 아야 소리도 못하는 법.

한국전쟁 참전 용사이며 군사혁명 후 면장으로 취임한 분이 있었다. 퇴직금을 일괄 수령해 사위 사업에 몽땅 투자했다. 사위의 사업이 잘 굴러 갔으면 좋으련만 아뿔싸, 한꺼번에 망했다.

그 충격으로 부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의 몸이 되어 불편하시다. 집이라야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지 비닐로 바람막이를 한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다. 가끔 면장으로 모셨던 공무원들이 찾아보지만 항상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 기어이 면사무소 구호양곡으로 연명하게 되었으니 말씀이 아니다. 이런 예가 심심치 않게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아들의 사업에 투자를 했다가, 딸을 돕다가…. 그것도 그렇다. 아들딸의 사업이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는데 아비가 되어 나 몰라라 할 위인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일이 있다. 장·차관을 지냈던 분의 부인이 하소연을 하는데 자손들에게 재산 몇 푼씩 나누어 주고 나면 먹고 살 돈이 없다고 푸념을 하더란다. 그 말을 듣고 즉석에서 “그건 부인 잘못이야. 현역으로 있을 때 미리준비를 하고 퇴직 후의 일을 대비했어야지” 하는 말이나왔다.

그러나 아니다. 부인이 준비하기 전에 남자가 미리 챙겼어야 한다. 모자라는 곳은 없는가. 퇴직 후 여유자금은 넉넉한가. 그것을 챙기지 못한 게 나다. 현역으로 있을 때 직장이나 집안에서 큰돈 들어갈 일 있을 때 무조건 아내에게 돈 구해오라 해놓고, 쓰고 나서 까맣게 잊고 지내다 퇴직 후 점검해 보니 여기저기 새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불같이 성을 내고 아내를 닦달해 보지만 요건 조기에 조건 요기에 썼다고 사용처의 자초지종을 하나하나 주워섬기는데 아연실색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이걸 어찌한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주는 돈 뭉텅뭉텅 받아먹을 걸. 누군가 자기는 아들딸 손자 먹고 살 돈충분히 장만해 놓았노라 하는 자랑을 듣고, 질색한 적이 있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런데 지금 그 친구의 선견지명이 부러우니 내가 헛살았나?

육군 고위 장교로 제대한 사람의 강연을 들었다. 제대하고 오랫동안 직장을 구하러 뛰어다녔지만 반겨주는사람 하나 없더라. 현역으로 있을 땐 간이라도 빼어줄 것만 같았던 사업자들의 표리부동, 냉정한 사회, 나 몰라라 돌아선 선후배…. 직장 구걸을 하다 극장에 들렀다. 시작 벨이 울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왜 그리 원통하고 억울한지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더란다.

국가를 위하여 전장에서 인민군을 무찌르고 크고 작은 국책 사업에서, 죽다 살아남은 몸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온 나에게 국가가 이렇게 냉대할 수가 있는가.

왜 나라고 그런 생각이 없을 리 있겠는가. 공군 중사로 제대해 아무리 직장을 구하려 해도 일자리가 없었다.

공무원 생활을 하는 선배를 찾아갔다.

“너나 나나 끗발 없고 돈 없는 놈은 공무원밖에 없다.”

그 말씀 일리 있다 생각하고 즉각 공부하고 시험보고합격해 면서기로 발령이 났다. 중사로 퇴직해 9급 공무원이라니 마이너스 인생 아냐, 하며 아쉬워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장교 출신도 있었으니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일주일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에 집에서 못잔 잠을 보충 중인데 부면장이 호출해 하는 말씀.

“계장은 물론 면장님 이하 전 직원이 나와서 근무 중인데 당신은 집에서 쉬다니?”

그 날 이후 1년 365일 끽소리 못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나 공휴일이나 근무를 했다. 낮에는 하루 종일 부락에 나가 퇴비독려, 논갈이, 누에치기, 병충해 방제, 소주 밀식, 통일벼 재배, 보온절충못자리 등을 독려하고 해 떨어지면 면사무소에 들어와 야근을 했다. 밤 10시, 11시, 12시 아니면 꼬박 새워서라도 지시 공문에 대한 보고기일은 꼭 지켜야 했다. 안 지키는 날이면 날벼락이떨어질 판이었다. 도청에서 군청에서 빗발치는 독촉에누가 견디랴.

면서기를 딱 2년만 하고 때려치운다고 맹세했는데 평생직장이 되고 말았다. 여북하면 6급 진급할 때 KOICA(국제 협력단)에 근무하는 동생이 그 잘나 빠진면서기도 직장이냐며 비웃더란 말을 전해 듣기까지 했다.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겨우 5급 공무원으로 진급해 퇴직했다. 그나마도 나이 많아 기간제 사무관이라던가.

진급시켜주면 1년만 근무하고 나가기. 나가란 말 나오자 마자 깔끔하게 나왔다.

언젠가 면장이 회의석상에서 뭐가 화가 났는지 한마디 했다.

“당신네들 조국을 위해 공무원 한다고? 웃기지 마. 다 당신들 먹고 살자고 공무원 하는 거 아냐?”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그 말씀이 퇴직하고 한참 지난 지금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뭐냐. 퇴직할 때만 해도 보릿고개를 없애고 고속도로를 건설하였으며 꿈에도 생각지 못한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별천지를 만들었다. 당시 ‘공무원은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라는 자부심이 팽배했다. 우리가 고생했던 퇴비독려, 조춘경, 논보리재배, 지붕개량…. 이것들이 조국 근대화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금자탑은 무너졌다. 총탄에 쓰러지고 수형受刑으로 일그러진, 그리고 하염없이 몰락한 보수의 그림자.

이젠 퇴직할 때 받은 훈장도 퇴색했고 크고 작은 공적들이 쓰레기로 치워진 지 오래다. 혹시나 하고 백과사전을 뒤적였는데 ‘말단 공무원 면서기가 조국 근대화의 역군.’

이런 말은 어디에도 없다. 네이버에도 다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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