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인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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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인을 그리며
  • 김영택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9.0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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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 중앙신문=김영택 | 중부고속도로를 경유하다 보면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에 이르러 잘 가꿔진 가족묘를 보게 된다.

처음 보았을 때는 부잣집 산소이거니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으나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 보다 보니 예사롭지 않은 산소 같아 관심을 갖던 중 어느 날 또다시 그곳을 지나치게 되어 주변에 물어보니 놀랍게도 허난설헌과 그 시댁 안동 김 씨의 가족묘란다.

허난설헌이 그 누구였던가 암울했던 역사의 세월 속에 가려져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로서 조선시대 오백 년을 통틀어 여류문인을 대표하는 천재 시인이다.

자고로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고 크게 될 사람은 어려서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문헌에 의하면 그녀는 이미 나이 어린 7세에 상량문을 지어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온 나라가 유교사상에 물들어 여자의 재능과 자존심을 일절 용납하지 않은 조선시대의 사회구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뛰어난 글솜씨로 여류문학을 꽃피게 한 장본인이었다. 허난설헌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니 아버지는 선조 때 명신이었던 초당 허엽이었고 어머니는 예조참판 김광철의 딸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허난설헌은 위로는 오빠 둘과 언니 둘을 두었고 밑으로 남동생 하나를 두었다고 한다 그 남동생이 홍길동 전을 지은 저 유명한 허균이었다.

난설헌은 나이 14세에 안동 김 씨 문중의 김성립에 출가했다 그러나 여자의 행복을 꿈꾼 벅찬 기대와는 달리 결혼생활은 내내 불행했다고 전해온다. 서릿발처럼 모진 시댁살이와 열등의식에 등을 돌린 남편의 외도는 그녀를 마냥 힘들게 했고 거기에다 당쟁에 말려든 친정의 몰락과 정신적 지주였던 자녀들의 잇단 죽음은 더 이상 그녀를 이 땅에 살 수 없게 했다. 결국 27세의 한창나이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죽음을 택했다.

난설헌은 생전에 세 가지 한이 있었다고 전해온다.

먼저 사대주의 사상에 박힌 조선에 태어난 것과 여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아내가 된 것에 한을 두고 살았다고 한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권위적 사회이었던 조선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냘픈 희망과 여자라는 굴레의 제약이 없었을 것 아니겠냐는 원망과 하소연이 눈물처럼 배어있는 대목이다.

난설헌의 시는 우리나라보다 중국과 일본에 더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죽음에 앞서 그동안의 작품을 모두 소각시켰으나 동생 허균이 누나의 유품을 정리하다 일부 남은 작품을 모아 난설헌의 시집을 만든 것이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눈에 들어와 이를 중국에서 출판한 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중국인들이 난설헌을 흠모하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의 경우에는 숙종 18년에 지방의 동래부에서 개판 한중 간본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당시 일본의 거장으로 알려진 분다이야의 손에 의해 간행된 것이 일본의 문단을 휩쓸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암흑세계와도 같은 시대에 태어난 난설헌과 허균은 시와 소설로 이상의 꿈을 펼쳐나갔으나 그들의 출중한 재능을 받아들이기에는 조선은 너무나 미약하고 부족한 시대였다.

결국 난설헌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허균은 민중을 선동시킨 대역죄로 능지처참을 당하고 만다.

여류문학의 독보적 존재로 칭송을 받고 있는 난설헌의 시는 국내에 남아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죽기 전에 많은 작품들을 소각했고 남겨진 작품 일부도 대부분 외국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한다.

그나마도 다행 스러운 것은 허균의 노력에 의해 보존된 시집이 남아있어 후세 사람들이 난설헌을 잊지않고 오늘에이르고 있다. 난설헌의 시는 결혼전과 결혼후의 시상이 완연히 다르다. 결혼전의 시들은 꿈만은 소녀에 비한다면 결혼후의 시들은 비련과 절망이 절절히 뿜어나오는 가슴아픈 글들이 많다. 난설헌의 시중에 연꽃에 비유하여 사랑을 담아낸 연적의 시가 뭉클 가슴에 와닿는다.

가을하늘 드맑아

호수의 푸른물 구슬처럼 맑아라

연꽃 우거진 깊숙 한곳에

목란 배를 살며시 매어두고

사랑하는 님과 만나

연밥을 따서 던졌지요

행여나 남들이 엿볼까봐

나는 한나절이나 부끄러웠어요.

이시는 처녀시절 사랑하는 님을 만난 핑크빛 감정을 연꽃에 비유하여 살며시 드러낸 애상적인 시로서 연인들의 사랑을 받기에 더없는 글이 분명하다.

읽고 또 읽음에 따라 절세가인이었던 난설헌의 자태를 떠올리게 하고 천재 시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는 것 같다. 천재 시인이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난설헌은 자신의 예술혼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고통과 눈물 속에서 방황을 하다가 짧은 생애를 마쳤다.

그녀는 생전에 사랑했던 슬하의 자녀들과 같이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의 무갑 산속에 깊이 잠들어있다. 그녀의 무덤이 아직도 세상을 원망하며 광주 고을 산하를 눈물로 지켜보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그녀를 기리는 묘비석에는 매년 후학들이 찾아와 정성껏 예를 올리고 간다고 한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듯이 난설헌 그녀 역시 아무 말이 없다 한 시대의 희생물이 되어 원통하게 죽어간 난설헌의 영혼이 고요한 무갑산 산속에서 영면하게 되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가여움을 마음속에 담아보지만 매일같이 소음을 발생시켜 잠자는 영혼을 방해하고 혼란시키는 고속도로로 인하여 그 어떤 위로의 제문도 천제 시인의 영혼을 달랠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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