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이어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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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이어가는 것들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9.0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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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처럼 넓은 밭에 목초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주변에 가축을 기르는 집이 많아 목초를 심은 밭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여러 마리의 백로가 목초 밭에서 놀고 있는 듯한 모습이 종종 눈에 띄어 진초록 풀 속을 걸어 다니는 하얀 백로가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듯 보기 좋았다.

서서히 한더위가 가시고 목초가 사람 키만큼 자랐을 때, 트랙터가 와서 밭의 목초를 다 베어 뉘어놓았다. 건초가 된 후, 엔시레이지를 만드는 비닐에 담겨졌다. 그 둥근 비닐 뭉치가 치워 지던 날, 어디서 날아 왔는지, 50여 마리도 넘는 백로가 머리를 박고 온 밭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먼저 다녀간 백로가 함께 지내는 가족과 동료들을 몰고 왔다 보다. 많은 백로의 움직임이 눈을 흩뿌린 듯 장관을 이루었다.

연안 물고기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사람들이 약을 뿌려 물고기의 씨가 말라가고,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조류가 먹을 것이 없어 곤충을 먹는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백로들도 목초가 베어진 밭에 곤충을 잡아먹으러 온 것 같다. 보는 사람은 구경거리지만 먹을 물고기가 없어 밭으로 날아온 백로 떼는 얼마나 살아가기 힘들까.

요즘 집 근처에 참새가 부쩍 늘었다. 수도 없이 날아다니는 풀무치를 먹기 위해서인가 보다. 전에 보던 송장메뚜기하고는 다르게 검은 몸통의 등에 녹색 줄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풀무치는 징그럽기까지 하다. 

수많은 풀무치가 집 주위를 날아다니며 심어 놓은 작물이나 풀을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니 난감한 일이다. 집안에까지 들어와 여기 저기 널려 있는 배설물은 꼭 생쥐의 변처럼 생겨 주변에 생쥐가 있나하고 살펴보게 한다.

우리가 풀무치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을 때, 해남에는 엄청난 풀무치 떼로 농작물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몇 년 전부터 눈에 띄더니 이제는 제 세상인 듯 돌아다니고 있어 섬찟하다. 중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 방대한 나라에서 오는 곤충과 어떻게 대치해야 되나 걱정이 된다.

오늘 아침, 날이 훤해지기 시작해서 양봉장에 나갔더니 통 안에 있던 벌이 모두 밖에 나와 싸울 자세를 갖추고, 공중을 선회하고 있는 일곱 여덟 마리쯤 되는 말벌과 마주보고 있다.

8월 초, 처음 말벌이 오기 시작했을 때는 어른 엄지손가락만 하던 것이 초가을로 들어선 지금은 아주 작아져서 중벌하고 구별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양봉장을 지키면서 잡아 없애서, 벌을 물어가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린 것인지. 먹을 것이 없는 겨울에 일할 수 있는 말벌은 다 죽고, 여왕말벌 한 마리만 살아남으니 도태시키기 위한 준비 과정인지 모르지만, 수도 줄고 작아진 말벌을 보면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그리 된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동네 집집마다 김장밭에 고라니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울타리를 쳐 놓았다. 고라니가 심어 놓은 김장을 다 뜯어 먹으니 궁여지책으로 울타리를 둘러놓은 것이다. 우리 집에도 고구마 밭을 지키던 개를 김장 밭 지킴이로 바꾸어 놓았다. 

요즘은 고구마 잎이 질겨서인지 고라니가 뜯어 먹지를 않는다. 작년에는 배추에 신경을 늦게 쓴 탓에 잘 자란 좋은 배추만 고라니가 다 먹어 치웠다.

며칠간 밭을 지켰으니 고라니가 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오지 않을 줄 알고 하룻밤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아침에 나가보니 예쁘게 자라고 있는 무를 두 고랑이나 사그리 뜯어 먹었다.

요즘 도토리와 밤을 줍는 사람들이 산에 쫙 깔렸다. 하루 종일 허리 굽혀 풀숲을 헤집는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는다. 도토리를 주워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도토리와 밤을 갈무리 했다가 겨울을 나야 되는 산짐승들을 어떻게 하라고. 사람에 의해 생존을 위협 받는 짐승들이 걱정이다.

우리 집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현상도 이런데 이곳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을지 짐작이 된다.

사람이나 짐승, 새, 곤충까지, 먹고 사는 일이 힘이 든다. 자연의 법칙이 오묘하니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생명조차도 순환의 한 방편인지 모르겠다. 멸종하는 생명이 없이 생겨나는 대로 다 생존한다면 지구가 포화 상태가 될 것 같아 자연이 알아서 정리를 하는 것일까.

아름다운 백로의 자태를 보고 있으면, 힘들게 먹이를 찾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지구상에 생명이 존재하는 한 벌어지는 생존경쟁도 자연의 이치이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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