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신문=김연호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라는 대중가요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얼마 전에 12·12 군사반란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왠지 모를 착잡한 심정으로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김광석의 노래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왜 그 상황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떠올랐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 정치적 상황이 뭔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 걸일까. 출연진 대부분이 군인들인 영화라 20대 시절 군대 갈 때 흥얼거렸던 노래가 툭 튀어나온 걸까.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와 아쉬움이 느껴졌고 숨이 막힐 정도의 답답한 심정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필자가 느낀 답답함의 원천은 무엇인지, 왜 김광석의 노래가 뜬금없이 튀어나왔는지 필자는 한동안 ‘서울의 봄’의 후유증을 앓아야만 했다.
사실 필자는 상영관에서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다. 영화에 대해 문외한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극장에 가는 것을 귀찮아한다.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를 가족들과 겨우 보는 정도이고, 예매도 아내나 애들이 해줘야 따라나서는 편이다. ‘서울의 봄’은 단독 관람한 내 생애 최초의 영화이다. 물론 인터넷 예매는 아내가 해줬고, 연일 언론에 쏟아지는 홍보성 기사 덕분이었다. 뻔히 아는 역사적 사실을 감독이 어떻게 풀어냈기에 관객이 몰리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도 발동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20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관객 수 흐름과 예매율을 고려했을 때 천만 관객 달성이 유력하다고 한다. 관객층도 필자와 같은 중장년층도 있지만, 20~30대의 비중이 절반을 상회하는 56%로 영화 흥행의 1등 공신이라는 것이 영화 배급사의 평가다. ‘서울의 봄’ 개봉 전에는 극적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다소 무거운 역사를 다룬 소재와 주요 배역들의 특성상 젊은 층을 영화관으로 이끌어 내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20~30대가 최근의 흥행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강한 몰입도 이외에 영화의 어떤 측면이 젊은 층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였는지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궁금점이 남아있다.
우리의 80년대는 거대한 국가 범죄로 시작되었고, 그 출발점은 12·12 군사반란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12·12 군사반란에 성공하면서 역사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하였고, 결국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다. 그 봄은 느리게 찾아왔고, 그 봄은 청년, 학생, 시민, 노동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뒤따른 후에 겨우 찾아왔다. 12·12 군사반란은 우리에게 뼈아픈 역사였고, 우리 모두에게 남긴 상처는 너무나 컸다. 필자는 서울의 봄을 기다리는 그 시절에 청소년기와 대학시절을 보냈다. 젊은 날의 꿈을 꾸며 ‘이제 다시 시작이다’를 되뇌었고, 힘겨웠지만 다시 서울의 봄을 기다리는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하고자 노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SNS를 통해 “불의한 반란 세력과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라는 ‘서울의 봄’을 관람한 소감을 밝혔다. 필자에게도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서울의 봄’은 온 걸까? 시민항쟁을 통해 쟁취한 1987 체제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는 이뤄냈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많다. ‘서울의 봄’이 신군부 세력의 퇴진이라면 이미 ‘서울의 봄’이 왔다고 할 수도 있다. 과연 12·12 군사반란 주역들이 온당한 처벌과 역사적 평가를 받았는가? 그 뼈아픈 역사를 저지른 반란 행위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는가?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서울의 봄’은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다. 그 봄은 더디게 올지라도 누군가는 준비해야 한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불의한 역사에 대해 분노를 느꼈을 20~30세대가 그 주역이 아닐까? 새로운 서울의 봄을 준비하기 위해 다음 세대의 항전이 필요해 보인다. 더 나은 시민의 삶과 더 좋은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의 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군대 가기 전에 우리 선배 세대는 최백호의 ‘입양전야’를 불렀고, 우리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 새로운 ‘서울의 봄’의 주역들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입영 노래로 어떤 노래를 부를까? 촌스럽다고 입영 노래를 안 부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