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경기옛길을 걷다] 경흥길, 양주와 포천을 가르는 어하고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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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경기옛길을 걷다] 경흥길, 양주와 포천을 가르는 어하고갯길
  • 김성운 기자  sw3663@hanmail.net
  • 승인 2022.05.0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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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산맥’은 사람의 몸으로 따진다면 경기중북부의 척추로, 의정부·양주·포천·동두천이 하나의 생활문화권인 것도 그 경계를 가름하는 천보산맥의 지맥과도 연관이 많다. 사진은 천보산 정성 표지석. (사진=김성운 기자)

| 중앙신문=김성운 기자 | 의정부·양주·포천·동두천 품어주는 ‘천보산맥’
'바람이 마중'하는 회암사지터의 웅장한 광경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봄날 도저히 푸르른 산의 품속에 뛰어들지 않을 도리가 없어 륙색을 간단히 챙겨 집을 나섰다.

천보산맥은 경기중북부의 척추다. 의정부·양주·포천·동두천이 하나의 생활문화권인 것도 그 경계를 가름하는 천보산맥의 지맥과도 연관이 많다.

남으로는 의정부 금오동에서부터 시작해 고양이 등처럼 곡선으로 크게 휜 산맥이다. 포천과 의정부의 경계인 축석령을 지나 양주와 포천의 경계인 어하고개, 이어 북으로 나아가면 조선 태조 이성계의 흔적이 깃든 회암사지가 나온다. 회암사를 기점으로 북동쪽으로는 해룡산과 왕방산으로 이어지는 포천, 북서쪽은 칠봉산으로 이어지며 동두천까지 닿는다.

경흥로는 서울(한성)과 한반도 동북지역(강원도·함경도)을 이어주는 주요 교통로였다. 사진은 경흥길 안내판. (사진=김성운 기자)

정상 도착 후 능선따라 걷는 맛 '일품'
한성과 한반도 동북지역 잇던 교통로

높이 400m 이상의 낮은 산이지만 길고 가늘다. 정상까지 빠르게 당도해 능선을 따라 걷는 맛이 일품이다. ‘지리산 종주’ ‘덕유산 종주’ ‘설악산 종주’ ‘한라산 등산에 앞서 종주산행 초심자들에게 적절한 난이도를 선사해준다.

들머리와 탈출로가 곳곳에 마련됐으며 도심과 가까운데다, 서울 근교 북한산·도봉산·관악산·아차산·수락산·불암산에 비해 등산객들도 적어 여유로운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좋다.

기자가 천보산을 찾아간 7일도 등산객이 간간이 눈에 띌 뿐 주변에는 온통 새소리, 바람소리였다. 양주와 포천을 잇는 어하터널 옆 어하고갯길을 통해 북쪽으로 나아갔더니 경흥길이라는 알림 리본이 나무에 눈에 띄게 매여 있다.

이렇게 만났다 경기옛길. 경기옛길 홈페이지에 따르면 경흥로는 서울(한성)과 한반도 동북지역(강원도·함경도)을 이어주는 주요 교통로였다.

이중 경기도 구간은 누원(다락원)~축석령~송우점~만세교~김화(자일리)’까지이며, 의정부와 포천을 지나는 길도 경흥로의 일부다.

경흥로는 한성과 동북지방을 연결하는 길이기에 태봉을 세우고 일어난 궁예가 지나간 길이며, 고려 시기 여진족의 침입과 이에 대응한 윤관의 출정도 경흥로를 통해 이뤄졌다. 세종 시기 이뤄진 6진의 개척도 경흥로가 무대였으며, 현대로 넘어오면서 경흥로는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다.

포천과 의정부의 경계인 축석령을 지나 양주와 포천의 경계인 어하고개, 이어 북으로 나아가면 조선 태조 이성계의 흔적이 깃든 회암사지가 나온다. (사진=김성운 기자)

동북방의 물산 주유통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길

경흥로는 과거 동북방의 물산이 서울로 들어오는 유통로였다. 명태, 삼베 유통의 주요 경로였다. 함경도 원산에서 강원도 철원을 거쳐 포천과 양주로 모였고, 물산이 모이는 곳에 장이 섰다.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길이었다. 고모리산성, 성동리산성, 반월산성 등은 경흥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군사시설이다.

그도 그럴 듯이 아직도 이 길 곳곳에는 대한민국 육군이 사용했던 참호가 남아 있었다. 이른바 투바위고개라고 불리는 지점은 참호와 함께 장갑차 진지도 여러 군데 발견됐다.

어하고개는 과거 원바위고개라고 불렸고, 회암고개는 아직도 투바위고개로 불린다. 이러한 지명은 한국전쟁 이후 주둔한 미군들로부터 유래한다. 미군들은 이 곳을 작전상 암호로 불렀는데 ‘1Y(원와이)’, ‘2Y(투와이)’로 각각 불렀다. 이를 전해들은 지역민들은 원와이를 원바위, 투와이를 투바위라고 부르게 됐다.

투바위고개 식당의 추어탕은 포천과 양주의 맛집으로 유명하다. 구불구불한 투바위고개의 정점에 위치해 있으며, 경흥길을 이어나가는 지점의 휴게소역할을 한다.

투바위고개 바로 위에는 긴 철책이 세워졌는데 이는 ‘아프리카 돼지열병 차단’을 위함이다. 등산객들이 스스로 여닫을 수 있다. (사진=김성운 기자)

투바위고개 세워진 긴 철책
아프리카 돼지열병 차단막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사진=김성운 기자)
회암사지의 거대한 공허함을 만끽하고 이제 경흥길을 벗어나려는데, 천보산 회암사에서 범종을 때리는 소리가 은은히 울려온다. (사진=김성운 기자)

회암사지 공허함 느낄때
잔잔한 범종 소리 들려와

투바위고개 바로 위에는 긴 철책이 세워졌는데 이는 아프리카 돼지열병 차단을 위함이다. 등산객들이 스스로 여닫을 수 있다. 여기서 힘을 내면 30분 내로 천보산 정상 비석까지 만날 수 있다. 의정부 금오동의 천보산정상비와 같은 명칭이라 싱겁다. 차라리 천보산 회암령등의 다른 명칭을 붙여주면 어떨까.

이날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해 천보산 정상비에서 양주벌판(옥정신도시)을 감상한 뒤 하산했다. 회암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가파른 암석지대인데 모래가 바위 사이사이에 깔려 있어 미끄러우니 조심조심해야 한다. 기자도 내려오다가 넘어져서 손을 다쳤다.

암벽마다 플라스틱 손잡이를 수십여개 박아 고정했는데 흉했다. 손가락처럼 가는 플라스틱이라 밟기도 불편했고 오히려 실족의 위험을 촉발할 위험있는 장애물이었다.

회암사는 조촐한 사찰이지만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부도탑 등 보물이 즐비하다. 의정부 녹양동부터 시작해 반원형으로 휘어진 천보산맥이 품속에 꼭 끌어안은 듯한 지점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조선 왕조 최대 사찰이었다는 회암사지(옛 회암사터)’의 장엄한 ()’를 만끽할 수 있다.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인 이 곳은 굳이 비교하자면 경주 황룡사터보다는 볼 것이 많다. 황룡사터는 완전 없음에 가깝다.

이 정갈하고 황폐한 옛 절터에는 건물 한 채 없지만 땅 속에 박혀 남아 있는 주춧돌들만으로도 능히 상상력을 활개 치게 한다. 어린이들과 청소년을 비롯해 어른들을 위한 체험교육 공간으로도 일품인 곳이다.

회암사지의 거대한 공허함을 만끽하고 이제 경흥길을 벗어나려는데, 천보산 회암사에서 범종을 때리는 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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