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일요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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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의 목화솜 모정]일요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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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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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일요일 아침, TV를 켜니 아는 얼굴이 환하게 나온다. 분장도 잘 하였는지 얼굴이 뽀얗다. 쉽고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며 간간히 웃는 얼굴을 대하니 새삼 옛날이 그리워진다. 전라도 장흥 산골에서 태어나 3십리 길을 걸어 학교를 다니는데 하도 고생스러워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학교 문턱도 쳐다보지 않겠다던 소년. 어찌어찌 고려대학 신방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어렵게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하고 모교에서 평생 공부하며 선생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였다. 보길도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남은재(南垠齋)라고 이름 지은 집을 마련하고 소설을 쓰고 있단다. 이미 작년에 ‘담징’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개화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언론의 역사를 집대성한 한국의 대표적 언론학자. 김민환(金珉煥)박사. 그는 순수하고 정의감으로 꽉 찬 정직한 지성이었다. 보길도에 자리 잡고 소설가로 변신하였다니 삭풍처럼 불어오는 칼바람으로 채워진 가난한 대학생활, 가시돋힌 사회생활을 이겨 냈으면 됐지, 무엇하러 새로운 짐을 지고 어려운 세상살이를 시작 하는가 걱정이 된다.

방송이 끝나고 당장 전화를 하니 잔잔한 김 박사 목소리가 정겹다. 내년 봄 내외가 꼭 보길도에 놀러 오라는 얘기를 옆에서 듣는 아내의 입이 확 벌어진다. 내년 봄에는 남도여행을 가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어야겠다.

한 때는 매일 얼굴을 보며 정을 나누던 대학 후배, 김 박사의 앞길이 장대하고 새 살림이 성공하도록 축원하였다.

TV방송의 위력은 대단하다. 방울비닐을 유리창 안에 붙이면 차가운 바람을 막을 수 있다는 방송이 나가자 모든 이들이 알고 많은 사람들이 유리창에 비닐을 두르고 있다. 나도 솔깃하여 사위에게 주문을 부탁하고 1mx50m 짜리를 구입하였다. 대학 입학시험을 마치고 다니러 온 외손자와 유리창 길이와 폭을 재고 가위로 잘라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손으로 대충 투덕거리니 작업 끝이다. 쉽다.

안방, 건너 방, 마루 분합문, 뒤 창문, 부엌문까지 골고루 완료하는데 채 두 시간이 안 걸렸다.

보일러 스위치에 표시된 실내 온도가 17도에서 꼼짝도 않더니 비닐 붙이고 몇 시간 지나자 20도를 표시한다. 실내온도가 3도나 상승하였다니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인가. 친구들, 지인들에게 자랑을 하니 자기들도 비닐을 구해 달라고 한다.

어제 가족들 모임에서 딸에게 ‘친구2’ 영화가 무슨 내용이냐고 얘기를 했더니 손자에게 시골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영화관에 모시고 가라고 돈을 쥐어 주었다. 읍내 극장엘 가니 손자가 학생할인을 받으려고 한 모양인데 그 영화는 학생입장 불가라고 표도 못 사고 서성인다. 내가 나서서 ‘친구2’ 표를 우리 내외는 경로할인을 받아 사고 손자는 다른 영화를 보는 것으로 표를 사서 직원 모르게 입장을 하였으니 나는 나쁜 할아버지이다.

전형적인 싸움패의 온갖 행태를 보며 남자들의 세계는 저런 구석도 있다는 걸 공부벌레 손자에게 말해 주었다. 배우들의 싸늘한 눈초리, 질박한 경상도사투리, 싸움패들의 싸움구경만 하고 극장을 나서니 벌써 어둡다. 예약한 통닭과 피자를 들고 집에 와서 맥주와 곁들이는데, 할머니와 손자가 게 눈 감추듯 해버렸다.

외손자 재윤이는 어렸을 적부터 며칠씩 외가에서 묵은 적이 있다. 어른들이 나이롱 뻥 화투놀이 하는 걸 보았는데 저도 끼어서 하더니, 외가만 오면 나이롱 뻥을 하자고 보챘었다. 오늘도 예외 없이 화투판을 벌이고 셋이서 깔깔대며 저녁시간을 즐긴다. 나는 화투놀이가 재미있을 리 없고 외손자 기분 맞춰 주는 건데 녀석도 미안한지 몇 판 하고는 그만하자고 한다.

아내는 낮에 본 싸움영화가 재미없었다고 투덜거린다.

TV로 영화를 보던 게 있는데 재미있다고 나에게도 보란다. ‘방가 방가’라는 영화인데 취업이 안 되는 젊은이가 외국인근로자로 위장하여 취업을 하고부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줄거리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와서 설움 받는 외국 젊은이들의 눈물겨운 직장생활, 사생활이 웃음과 울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들도 고국에서는 한 몫 하던 엘리트였을 텐데. 참고 견디며 꿈을 이루자고 이를 악 물면 그대들의 꿈은 멋지게 이루어 질 것이다. 마치 60-70년대 미국에 건너가 고생한 끝에 성공한 우리 교포들같이... 이곳에도 외국인들이나 다문화가정이 많다. 그들이 빨리 자리 잡고 안정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모처럼 푸근한 날씨, 귀한 손자와 하루를 유익하게 보내니 마음과 몸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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